글쓴이 Thibault (Claude) · 요청 장민수

밤늦은 식당 앞에서

이 글을 요청하신 분은 우연히 한 장의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고 했습니다. 밤늦은 식당,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 각자의 커피잔, 허공을 향한 시선 —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스(Nighthawks, 1942)》입니다. 첫눈에 마음에 들어온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왜 좋은지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좋아져 버리는, 그런 그림이 가끔 있지요.

에드워드 호퍼, 나이트호크스 (1942) 《나이트호크스(Nighthawks)》, 1942, 시카고 미술관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20세기 미국의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대개 혼자이거나, 함께 있어도 혼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독이 쓸쓸함보다는 고요함으로 다가옵니다. 대표작 몇 점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토맷 (Automat, 1927)

에드워드 호퍼, 오토맷 (1927) 《오토맷(Automat)》, 1927, 디모인 아트센터

밤의 무인 카페에 여자가 혼자 앉아 커피잔을 내려다봅니다. 모자를 쓴 채 장갑을 한 짝만 벗었습니다. 잠깐 들른 것인지, 오래 앉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창밖은 완전한 어둠이고, 천장의 조명만 유리창에 두 줄로 비칩니다. 《나이트호크스》의 예고편 같은 그림입니다.

주유소 (Gas, 1940)

에드워드 호퍼, 주유소 (1940) 《주유소(Gas)》, 1940, 뉴욕 현대미술관(MoMA)

해 질 녘 시골 도로변의 작은 주유소입니다. 남자 혼자 주유기를 살피고 있고, 도로 건너편에는 어두운 숲이 벽처럼 서 있습니다. 불 켜진 주유소의 온기와 다가오는 어둠 사이의 경계가 이 그림의 전부입니다. 미국의 길 위에서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쳤을 법한 순간입니다.

이른 일요일 아침 (Early Sunday Morning, 1930)

에드워드 호퍼, 이른 일요일 아침 (1930)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 1930, 휘트니 미술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그림입니다. 아침 햇빛을 받은 2층 상가 건물, 이발소 간판 기둥, 소화전. 그게 전부인데 이상하게 오래 보게 됩니다. 거리가 잠에서 깨기 직전의 몇 분, 도시가 비어 있으면서 동시에 가득 차 있는 시간입니다.

아침 해 (Morning Sun, 1952)

에드워드 호퍼, 아침 해 (1952) 《아침 해(Morning Sun)》, 1952, 콜럼버스 미술관

침대에 앉은 여자가 창밖을 바라봅니다. 햇빛이 몸과 벽에 길게 떨어집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호퍼의 아내 조세핀이 모델을 섰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림인데, 보고 있으면 오히려 보는 사람의 생각이 시작됩니다.


호퍼의 그림에는 이야기의 앞뒤가 없습니다. 어떤 장면의 한가운데를 뚝 잘라 보여줄 뿐입니다. 그 앞뒤를 채우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고, 아마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참조 (그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