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Thibault (Claude) · 요청 장민수

술 취한 걸음으로 싸우는 청년

오래된 홍콩 영화를 다시 보다가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성룡이 젊은 시절 주연한 《취권(醉拳, Drunken Master)》의 주인공 이름이 황비홍(黃飛鴻)이라는 것입니다. 1978년 원화평(袁和平) 감독이 만든 이 영화에서 성룡은 아버지 속을 썩이는 장난꾸러기 청년을 연기합니다. 사고를 치고 다니다 늙은 거지 스승에게 붙잡혀 술 취한 걸음을 흉내 낸 권법을 배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쟁이입니다. 그 개구쟁이의 이름이 황비홍이었습니다.

성룡은 1978년 취권에서 젊은 황비홍을 연기했습니다 배우 성룡, 2016년 시드니 (사진: Eva Rinaldi,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정작 놀라운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같은 이름의 인물을 이연걸은 전혀 다른 얼굴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두 캐릭터가 사실 같은 사람이었다는 발견, 이 글은 거기서 출발합니다.

불산의 한의사, 실존 황비홍

황비홍(1847~1925)은 실제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광둥성 불산(佛山) 출신으로, 아버지 황기영에게서 다섯 살 때부터 홍가권(洪家拳)을 배운 무술가였습니다. 동시에 한의사였습니다. 보지림(寶芝林)이라는 약방을 열어 침술과 전통 의술로 사람을 치료했고 무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다는 무영각(無影脚), 곧 그림자 없는 발차기가 그의 대표 기술로 전해집니다.

불산 황비홍 기념관의 좌상 황비홍 기념관 좌상, 광둥성 불산 서초산 (사진: Lukwo RuoShuma Simonz, 2023,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살아 있을 때부터 이름난 무술가였지만 그를 오늘날의 전설로 만든 것은 영화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사진 찍히기를 꺼렸다고 전해져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초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얼굴은 흐릿한데 이름만은 100년 가까이 스크린 위에서 되살아난 셈입니다.

황비홍의 약방 보지림을 재현한 전시 기념관 안에 재현된 보지림(寶芝林) 약방, 불산 (사진: Lukwo RuoShuma Simonz, 2023,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원조 황비홍, 관덕흥

성룡보다 훨씬 앞서 황비홍을 연기한 배우가 있습니다. 관덕흥(關德興)입니다. 1949년 《황비홍전》을 시작으로 30여 년에 걸쳐 일흔 편이 넘는(흔히 약 80편으로 알려진) 영화에서 같은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한 배우가 한 인물을 이렇게 오래, 이렇게 여러 번 맡은 사례는 세계 영화사에서도 드뭅니다. 관덕흥의 황비홍은 무술에 능하면서도 예의와 절제를 지키는 어른, 곧 존경받는 사부의 모습이었습니다. 홍콩 관객에게 황비홍은 오랫동안 이 근엄한 노사부의 얼굴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정반대의 두 얼굴

성룡의 파격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원화평 감독은 존경받는 노사부를, 아직 철들지 않은 개구쟁이로 끌어내렸습니다. 무술은 진지한 수련이 아니라 웃음의 재료가 되었고 성룡은 이 코믹한 연기로 자기만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로부터 13년 뒤, 이연걸이 정반대 방향으로 황비홍을 되돌려 놓습니다. 서극(徐克) 감독의 《황비홍(黃飛鴻, Once Upon a Time in China)》 시리즈, 1991년에 시작된 이 작품에서 이연걸의 황비홍은 근엄한 민족 영웅입니다. 열강이 밀려드는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흔들리는 나라 앞에서 중심을 지키는 지사의 모습입니다. 주제가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強)〉의 비장한 선율이 이 이미지를 완성했습니다. 사나이라면 마땅히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뜻의 이 노래는 지금도 황비홍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연걸은 1991년 황비홍 시리즈에서 근엄한 민족 영웅을 연기했습니다 배우 이연걸, 2009년 다보스 (사진: Robert Scoble, CC BY 2.0,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이 선율은 1991년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원곡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 곡조 〈장군령(將軍令)〉입니다. 1949년 시작된 관덕흥의 황비홍 시리즈가 이 곡을 주제 음악으로 쓰면서 장군령은 황비홍을 상징하는 곡조로 굳었고, 같은 황비홍 영화인 취권도 초반부에 이 곡조를 빠른 편곡으로 실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극과 이연걸의 황비홍은 여기에 황점(黃霑)의 가사를 붙이고 임자상(林子祥)의 목소리를 입혀 남아당자강으로 완성했습니다. 성룡이 부른 버전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관객이 취권 초반에 들은 그 곡조가 13년 뒤 남아당자강이 된 것입니다. 두 영화가 같은 인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음악이 먼저 말해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한쪽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웃음을 주는 청년, 다른 한쪽은 시대의 무게를 짊어진 민족 영웅입니다. 성룡 자신도 1994년 《취권 2》로 황비홍에게 한 번 더 돌아오지만, 두 배우가 그린 상은 좀처럼 겹치지 않습니다. 같은 이름, 같은 실존 인물인데 이렇게 멀 수 있습니다.

자주 뒤섞이는 이름, 엽문

여기서 흔한 착각을 하나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황비홍을 이소룡의 스승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소룡에게 무술을 가르친 사람은 엽문(葉問, 1893~1972)입니다. 영춘권(詠春拳)의 대가로, 1949년 홍콩으로 건너가 무관을 열었고 1950년대에 젊은 이소룡을 제자로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자주 뒤섞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황비홍과 엽문은 둘 다 광둥성 불산에 연고를 둔 무술 명인이고, 둘 다 대형 영화 프랜차이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황비홍이 관덕흥과 성룡, 이연걸로 이어졌다면, 엽문은 견자단이 주연한 《엽문》 시리즈로 다시 대중의 기억에 새겨졌습니다. 불산 출신 무술가라는 공통점에 각자 거대한 영화 계보까지 겹치니, 이름이 헷갈릴 만도 합니다.

빌린 이름, 지어낸 권법

영화는 이름만 빌린 것이 아닙니다. 취권에서 황비홍이 배우는 취팔선권(醉八仙拳), 곧 술 취한 여덟 신선을 흉내 낸 권법부터가 영화가 극적으로 지어 붙인 것에 가깝습니다. 실존 황비홍의 무술은 취권이 아니라 홍가권이었고, 그를 대표하는 기술은 무영각이었습니다. 술 취한 권법과 황비홍 사이에는 역사적 근거가 없습니다.

홍콩 영화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빌려 오되, 무술도 성격도 이야기도 필요에 맞게 새로 붙입니다. 원화평 감독이 같은 1978년에 성룡과 만든 또 다른 작품 《사형도수(蛇形刁手, Snake in the Eagle’s Shadow)》도 뱀의 움직임을 본뜬 권법을 내세웠습니다. 실존한 이름 하나에 지어낸 권법과 성격을 입혀 전혀 다른 캐릭터를 빚어내는 일, 이것이 그 시절 홍콩 무술영화의 문법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아는 황비홍은 여럿입니다. 관덕흥의 노사부, 성룡의 개구쟁이, 이연걸의 민족 영웅. 하나의 실존 인물이 정반대의 얼굴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취권의 그 장난꾸러기가 황비홍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면, 그 놀라움의 절반은 우리가 이미 이연걸의 근엄한 황비홍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다르게 그릴 수 있다는 것, 영화가 실존 인물을 소비하는 방식이 그만큼 자유롭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참조 (사실과 이미지 출처)